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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190703] 日자산가 외손자, 한국문화재 반환

작성자 : 우리옛돌박물관 | 작성일 : 19-07-20 10:29 | 조회수 : 141

日자산가 외손자, 한국문화재 반환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
조선 장군석 등 석물8점 환수

  • 김유태 기자
  • 입력 : 2019.07.01 17:3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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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공 없이 정면을 응시한 눈동자는 세월이 흘렀어도 푸근하고 강인했다. 키가 2m에 달하는 직립의 장군석은 검까지 쥐어 존재감이 묵직했다. 바로 그 옆에서, 흐른 세월을 오래 비춘 듯 처마 끝을 살짝 올린 장명등 두 점이 고요했다.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에 새로 전입(轉入)된 `물건 중의 물건`들이다. 국호 조선(朝鮮)이 지워졌던 92년 전, 타지를 배회하던 석물이 고국으로 귀향했다.

우리옛돌문화재단이 일본 가나가와현에 거주하는 오자와 데리유키 부부가 소유했던 석조 유물 8점이 우리옛돌박물관에 무상 기증돼 고국으로 환수된다고 1일 밝혔다. 이번에 돌아오는 석물은 능묘를 지키던 장군석 두 점이 가장 대표적으로, 제작 시기는 조선시대 중기로 추정된다. 사모지붕과 팔각지붕의 장명등도 1점씩, 아울러 묘비를 떠받쳤던 것으로 추정되는 비석받침까지 총 8점이다.

장군석과 장명등의 `디아스포라`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술품에 조예가 깊던 자산가 요시이에 게이조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도부철도 사장이던 네즈 가이치로를 제치고 1927년 경매에서 장군석 등 석물을 낙찰받아서였다. 전남 순천에 머물던 네즈는 고미술 애호가로도 저명했는데 요이시에가 경합에서 승기를 빼앗자 조선과 일본이 떠들썩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에노시마에 별장을 지은 요시이에는 석물과 자연의 조화를 꾀했다. 이후 그의 외동딸 오자와 하루코 여사를 거쳐, 별장은 요시이에의 막내 손자인 오자와 데리유키 씨(사진)에게 상속됐다. 임종 순간까지 모친이 지냈던 별장과 그의 뜻은 오자와 씨에게 거대한 유품과 같았다. 별장을 개발하려던 오자와 씨는 석물을 돌려줘야겠다고 판단했다. 일본이 아닌, 한국에 돌려줘야 마땅하다고도 봤다.

"장군석과 장면등은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별장을 정리하면서 의미 있는 곳에 기증하고 싶었고, 만약 기증한다면 일본이 아닌, 한국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오자와 씨는 2017년 12월 천신일 우리옛돌문화재단 이사장을 만나 이 같은 뜻을 밝히고 기증을 협약했다. 국제 전시를 기획하는 제이넷컴의 장선경 부사장이 오작교 역할을 맡았다.

2일 오후 4시에 열리는 개막식에는 정재숙 문화재청장, 지건길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등도 함께 자리한다. 정 문화재청장은 "한국과 일본 문화재 애호가들의 깊은 신뢰와 휴머니즘이 한일 양국에 더욱 확산되기를 기대한다"고 헌사했다. 석물 반환은 무상 기증 형식으로 이뤄졌다. 천 이사장도 "어려운 결단을 해주신 오자와 씨 부부에게 깊은 사의를 전한다"고 말했다. 오자와 씨는 특히 천 이사장의 `거듭된 전란으로 잃어버린 문화재를 되찾아 민족 자긍심을 회복하고 싶다`라는 뜻에 공감했다고 재단 측은 전했다. 천 이사장의 문화재 환수 노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천 이사장은 수많은 석물을 소장한 구사카 마모루 씨 소식을 듣고 2000년 수차례 그를 찾아가 설득했고, 문인석, 장군석, 동자석 등 70점을 환수한 바 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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