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과 한양 도성으로 둘러싸인 서울 성북동 언덕에 '돌사람'들이 모였다. 갑옷 입고 큰 칼을 찬 장군도 있고 관복 차림의 문인(文人)도 있다. 두 손을 모은 여인, 머리에 양쪽 뿔처럼 쌍상투를 튼 어린아이, 마을을 지키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장승까지…. 옛 석수장이가 정성껏 쪼고 다듬어 수세월 햇빛과 비바람을 맞았을 돌조각들이 야외 전시장에 늘어 서 있다. 볼수록 장관이다.
국내 최대 석조 유물 전문 박물관이 서울 도심에 문을 연다. 11일 개관하는 우리옛돌박물관은 부지 5500평, 건평 1000평 규모의 석물(石物) 박물관이다. 천신일 우리옛돌문화재단 이사장이 40년 넘게 수집한 옛 돌 1242점과 자수 280점, 근현대 한국 회화 78점을 내놨다. 2000년 경기도 용인에 세중옛돌박물관을 세운 천 이사장은 "그동안 모은 작품을 더 많은 분과 공유하기 위해 성북동에 박물관을 마련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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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건너온 돌사람, 고국 품에핵심 유물이 1층 '환수유물관'에 있다. 조선시대 문인석(文人石) 47점이 어둑한 방에 모여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발산한다. 천 이사장이 2001년 일본에서 되찾아온 석조 문화재 70점 중 일부다. 문인석은 장군석, 석수(石獸)와 함께 능묘를 지키기 위해 세워진 조각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상당수 일본으로 밀반출되거나 헐값에 팔려나갔다. 일본인 사업가 구사카 마모루(日下守)가 한국 석물을 갖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천 이사장은 수차례 그를 찾아가 "반드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바다를 건너 다시 돌아온 문인석들은 한국 석조 유물의 힘과 위엄을 보여준다. 공복(公服)을 입고 머리에는 복두(幞頭)나 금량관(金梁冠)을 쓴 채 두 손에 홀(笏)을 쥐고 있다. 천 이사장은 "일본에는 한국에서 가져간 석조 유물들이 아무 곳에나 널려 있다. 망주석을 건물 기둥으로 쓰고 음식점 앞에 문인석을 세워놓기도 한다"며 "앞으로도 일본에 있는 석조 문화재를 계속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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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와 장승, 기원을 품다우리옛돌박물관은 옛 돌조각과 그 안에 담긴 선인들의 수복강녕을 향한 염원이 담긴 '기원 박물관'이다. 2층 '동자관'에는 쌍상투를 틀고 갖가지 지물을 들고 있는 앙증맞은 표정의 동자상 63점이 언덕 위에 옹기종기 서 있다. 동자석은 16~18세기 서울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왕실 가족과 사대부 묘역에 조성된 석물이다. 연꽃이나 방망이, 주머니, 부채 등 지물마다 어떤 상징이 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옛 사람들은 마을 입구에 사람 얼굴을 한 벅수(전라도와 경상도에서 장승을 부르는 이름)가 서 있으면 잡귀들이 겁을 먹고 마을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다. 벅수 84점을 모은 '벅수관'은 민초의 삶을 반영한다. 한 쌍씩 짝을 이뤄 서 있는 벅수의 표정이 수더분하고 익살스럽다.
◇정원이 드넓은 야외 전시장
야외 전시장은 산책로를 겸한 '돌의 정원'으로 꾸몄다. 입구에 도열한 장군석부터 압도적이다. 능묘를 지키는 장군처럼 기개 넘치게 박물관을 지키고 있다. 궁이나 능묘를 지켰던 석수, 마을을 지키는 장승과 솟대가 길 따라 이어진다. 제주도 동자상만 모은 '제주도 푸른 밤', 아이들이 돌을 마음껏 만져볼 수 있게 꾸민 '오감만족' 등 다양한 주제로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도시락 싸들고 가족 나들이 하기에 딱 좋겠다.
자수 베개와 보자기 등 옛 여인들의 규방 문화를 볼 수 있는 자수관도 있다. 3층 기획전시관에선 개관 특별전으로 근현대 회화 작품을 선보
이는 '추상·구상·사이'전이 열린다.
안휘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기와에 유창종(유금와당박물관장·변호사)이 있다면, 돌조각에는 천신일이 있다. 중요한 볼거리들이 가득한 박물관"이라고 했고,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우리 민족의 뛰어난 예술성과 정교한 솜씨가 발현된 석조 문화재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서울에 생겼다"고 반겼다. (02)986-1001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