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리퍼터 전 주한미국대사가 천이사장의 희수연에 참석해 건강과 문화재 수집.보관 신념에
경의를 표해 줬다.ⓒSR타임스
Q. 받을 만 하니까 받은 것 같습니다 . 이사장님이 그동안 경제 ·산업계 , 체육 ·교육계 , 문화계등에서 많은 공적을 남겼기 때문 아닙니까 . 또 , 사업해서 모은 금원과 문화 유물을 학교 등에 많이 기부도 하지 않았나요 ?
== 1985 년 포항공대에 땅 6 만 3 천평을 기부했고 , 그 외 고려대 , 연세대 , 명지대 , 이화여대 , 포항공대 등과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에 기회가 되면 주식 , 금전 기부와 석물 유물 등 문화재를 기증해 왔습니다 .
이런 사회활동을 조금 폭넓게 하다 보니 정부로 부터 ‘국민훈장 ’도 받고 체육훈장 등을 받기도 했습니다 .
그렇다고 내가 훈장과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한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
국민훈장을 받게 된 동기도 그 당시에 감사원장 하는 분과 직원들이 경기도 용인에 있는 2000 년 개관한 세중 박물관을 방문 한 적이 있습니다 . 그 때 내가 일본으로부터 환수석조유물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감사원장이 자발적으로 관련 정부기관과 협의해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체육훈장 ‘맹호장 ’을 받은 것도 내가 아마추어레슬링협회장을 할 때 , 올림픽 등에서 메달을 많이 딸 때였습니다 . 조금만 기다려서 메달 하나만 더 따면 ‘청룡장 ’ 훈장을 받을 수 있는데 , 내가 자진해서 급은 낮지만 고대를 상징하는 ’맹호장 ’을 받았습니다 . 제가 상이나 보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우리 옛돌 박물관 ’이 소재하고 있는 서울 성북구의 ‘성북문화원 ’ 원장도 맡았습니다 .
그 당시 봉사직으로 사업을 하던 사람이 지역에서 문화와의 접점을 어떻게 찾아야 될 지를 많이 고민하고 노력한 시기였습니다 .
지금은 사업하는 사람들이 각 지역의 문화원장을 많이 맡고 있지만 , 그 때는 내가 시초인 듯해서 , 그 나름대로 방향성을 만들었지 않았나 자평해 봅니다 .
Q. 열정적인 사회활동을 하는 성격이시고 , 또 그때그때 현상 파악도 현실적이며 객관적인 이사장님께서 정치를 안하신 점이 의아한데요 ?
== (허허허 웃다가 ) 나라고 그 시대마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겠습니까 ?
첫번째는 ,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 잠깐 하다가 , 당시 서울대총장과 문교부 장관을 지내신 윤천주 국회의원의 권유로 그 분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
Q. 비서관 생활만 하고 정치를 그만 둔 건 아니죠 ?
== 비서관 생활을 하면서 나도 국회의원 꿈을 꿔 봤습니다 . 그러나 그 당시 국회의원이 되려면 ‘30 당 , 10 낙 ’이란 말이 파다 할 정도로 , 지역구 관리 하려면 30 억원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
지역주민 관혼상제 참석은 기본이고 , 지역주민 아들 취직 알선 만이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은행융자 민원까지 해결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 그래서 정치 안하기로 돌아 섰고 동양철강 공장장을 거쳐 ㈜제철화학을 설립했습니다 . 그 이후에 10.26 으로 집권한 군사정권 측에서 내 고향 부산 사상구에 출마하기를 종용한 적이 있습니다 .
문제는 그 당시에도 내가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만 듣고 지역 민원이 쇄도해 오는 상황이었습니다 . 그래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를 지금같이 하는 것이 나 개인한테도 또 사회에 나라에도 의미가 있겠다 판단했습니다 .
그래서 깨끗이 포기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