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인석부터 동자석·벅수까지…석조유물 한자리에
박물관을 채운 수많은 유물 중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무덤을 지켰던 석상들이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무덤가에 문인석과 장군석, 석수(石獸) 등의 석조물을 세웠다. 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죽은 이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였다.
1층의 환수유물관은 이런 묘제 석물 중에서도 문관 모습을 한 문인석들만 모아둔 곳이다. 조선 시대 양반가의 무덤을 지켰던 문인석 47점이 어둑어둑한 방에 모여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공복 차림의 문인석은 머리에 관모를 쓴 채 손을 가지런히 가슴 앞으로 모으고 있다.
두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임금을 알현할 때 갖췄던 '홀'이다. 원래 임금의 말씀을 붓글씨로 메모했다 지울 수 있게 만든 것인데 나중에는 의례적으로 들었다고 한다.
문인들의 모습은 얼핏 보기에 비슷하지만 크기도 제각각이고 표정도 제각각이다. 조금씩 다른 외양에서 문인석의 제작 시기나 무덤 주인의 계급을 추정해볼 수 있다.
키 170㎝의 문인석은 영의정이나 좌의정까지 오른 이들이 세울 수 있었다. 키 185㎝의 문인석은 왕가에서나 세울 수 있었다고 한다.
문인석이 제작된 시기는 관모나 관복의 모양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네모난 관모를 쓴 것은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제작된 것이고 둥근 관모를 쓴 것은 중기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제각기 다른 표정을 한 문인석들은 세월이 흐르며 군데군데 훼손되기도 했다. 특히 '코'가 닳거나 깨진 문인석이 많다. 이는 옛사람들이 믿었던 미신과도 관련이 있다.
주연경 학예사는 "돌 하르방 코를 만지면 아들 낳는다는 미신이 있듯 옛사람들은 문인석 코를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다"며 "시어머니들이 몰래 무덤가에 와서 문인석의 코를 갈아 가져가 며느리 국에 타기도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 바다를 건너온 돌사람
문인석은 통일신라 시대부터 왕릉에 세워졌고 조선 시대 양반가의 무덤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다수가 일본으로 밀반출되거나 헐값에 팔려나갔다.
1층 환수유물관에 있는 문인석 47점은 모두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됐다 돌아온 것들이다.
1978년부터 옛돌을 수집해 온 천신일 우리옛돌문화재단 이사장이 2001년 한 일본인 사업가로부터 되찾아왔다.
일부는 구입하고 일부는 기증받는 형식으로 총 70점을 환수했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이곳에 전시하고 나머지 일부는 다른 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1층에서 봤던 문인석들보다 훨씬 더 클 뿐 아니라 정교한 조각 솜씨도 돋보인다.
장군석은 주로 왕가의 무덤에 세워진 것으로, 문인석처럼 양반가의 무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장군석을 지나 동자관으로 들어서니 앙증맞은 석상들이 늘어서 있다. 아이들을 조각한 동자석이다.
동자석 역시 문인석이나 장군석처럼 왕실 가족이나 사대부 묘역에 놓인 석물이다.
옛사람들은 천의를 입은 동자가 죽은 자와 무덤을 찾는 참배객 사이를 오가며 심부름을 한다고 믿었다.
쌍상투를 튼 동자들이 들고 있는 다양한 지물에서 옛사람들의 소망을 읽을 수 있다.
생명 창조와 번영의 상징인 연꽃을 든 동자도 있고, 수호와 충성의 상징인 방망이를 든 동자도 있다.
옛사람들은 마을 입구나 길가에 사람 얼굴을 한 벅수가 있으면 전염병을 옮기는 역신이나 잡귀들이 겁을 먹고 마을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다.
또 재화를 막고 복을 가져다주는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고 여겨 벅수에 크고 작은 소원을 정성스레 빌었다.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한다지만 그 생김새는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수더분하고 익살스럽다.
툭 불거진 퉁방울 눈에 주먹코를 하고 송곳니와 앞니는 앞으로 삐져나와 있다.
양반가의 문인석처럼 전문 석공이 조각한 것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것이다 보니 정교한 맛은 없지만, 투박하면서도 친근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마을 어귀에 세웠던 돌장승인 벅수는 투박하면서도 친근한 느낌을 준다. [사진/조보희 기자]
◇ '돌의 정원'에서 즐기는 고즈넉한 산책
우리나라 근·현대 미술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획전시관과 옛 여인들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는 자수관까지 실내 전시관 관람을 모두 마치면 야외 정원을 둘러볼 차례다.
박물관 3층과 이어진 야외 전시장 '돌의 정원'으로 나오니 남산 서울타워부터 저 멀리 잠실 롯데월드타워까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전경이 일품이다.
돌로 된 언덕을 가꿔 만든 5천여평의 정원에는 실내 전시관에서 본 것보다 훨씬 많은 석조 유물들이 수목과 어우러져 있었다.
야외 전시장인 '돌의 정원'에서는 탁 트인 서울 시내 전경과 함께 다양한 석조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 [사진/조보희 기자]
실내에서 봤던 문인석과 장군석, 동자석, 벅수뿐만 아니라 궁이나 능묘를 지켰던 석수, 불상과 석탑, 기우제를 지냈던 기우제단 등 다양한 유물이 길 따라 이어진다.
관람객도 붐비지 않아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여유롭게 산책하며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기에 좋다.
어둑어둑한 방에서 봤던 문인석과 동자석, 벅수도 환한 햇빛 아래에서 보니 또 다른 느낌이다.
오랜 세월 비와 바람에 닳고 닳아 눈, 코, 입의 형체가 거의 사라진 돌사람도 있고, 양어깨에 초록빛 이끼가 내려앉은 돌사람도 있다. 구석구석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주연경 학예사는 "어두운 밤 조명 아래에서 보면 느낌이 또 다르고, 비 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에 보면 또 다르게 보인다"며 "이것이 바로 옛돌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돌의 정원에는 미륵불과 석탑 등 불교 석조 유물도 전시되어 있다. [우리옛돌박물관 제공]
조선 중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장군석은 일본의 한 사업가가 1927년 경매에서 낙찰받으면서 일본으로 건너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