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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2일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에서 일본 유출 문화재 환수 기념식이 열렸다. 사진은 환수된 조선중기 장군석. 2019.07.02. radiohead@newsis.com |
【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돌로 만들어진 우리 문화재 8점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오자와 데리유키 부부가 2일 오후 자신들의 소장했던 석조 유물 8점을 우리옛돌문화재단에 기증했다.
오자와 부부는 외조부 요시이에 게이조로부터 상속받은 석조 문화재가 조선의 문화유산이어서 이를 보존할 한국인에게 무상으로 기증하겠다고 생각했다. 2017년 장선경 제이넷컴 부사장에게 기증처를 의뢰했다. 작년 12월 장 부사장의 소개로 우리옛돌문화재단 천신일 이사장을 만나 이 유물들을 기증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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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2일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에서 일본 유출 문화재 환수 기념식이 열렸다. 사진은 환수된 비석받침. 2019.07.02. radiohead@newsis.com |
천 이사장은 2001년 사비를 들여 일본으로 유출된 한국 석조유물 70점을 되찾아와 10여점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한 바 있다.
천 이사장은 2일 서울 성북동에 있는 박물관에서 열린 일본 유출 문화재 환수 기념식에서 "오늘 공개하는 환수유물은 조선 중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군석, 장명등, 비석 받침, 수병 등 총 8점"이라며 "특히 장군석은 능묘를 지키는 장군 형상을 한 석인으로 갑옷을 입고 칼을 쥔 모습이 근엄하고 당당하다. 장군석 환수로 한국 석조유물의 힘과 위엄을 드높일 뿐만 아니라 장균석의 조각 양식에 대한 연구도 이뤄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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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2일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에서 일본 유출 문화재 환수 기념식이 열렸다. 사진은 환수된 조선후기 팔각지붕 장명등(왼쪽), 조선중기 사각지붕 장명등. 2019.07.02. radiohead@newsis.com |
기증된 유물 중 대표 문화재는 장군석 2점, 사모지붕 장명등, 1점, 팔각지붕 장명등 1점 , 비석받침 2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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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오자와 회계법인 오자와 테리유키 회장 내외가 2일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에서 열린 일본 유출 문화재 환수 기념식을 마친 후 장군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07.02. radiohead@newsis.com |
장군석은 조선 중기에 묘를 지키기 위해 세운 무관 모습을 한 석상이다. 근엄하고 경호 위세를 보이려고 턱을 목에 붙이고 있으며 치켜 올린 눈과 눈두덩에 힘이 강조됐다. 챙이 없는 둥근 투구를 쓰고, 이마와 귀를 덮는 드림이 위로 접혀있다. 양 어깨 갑옷에는 귀면문이 입을 벌리고 있고 아래로 소슬문이 장식되어 있다. 손을 모아 귀면상이 새겨진 칼자루를 꽉 쥐고, 검 끝이 아래로 향하게 해 똑바로 서 있다. 허리에는 칼집을 차고 있으며 말 탈 때 신는 가죽신발을 신었다.
사모지붕 장명등도 조선 중기에 제작된 석등이다. 체석(體石)에 커다란 직사각 형태로 뚫었고 불을 놓는 장소인 화창(火窓)을 마련했다. 대석(臺石)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선 3줄과 2줄을 새겼다. 중앙부는 잘록하게 다듬었다. 개석(蓋石)은 사모지붕이며 지붕 위를 석탑의 상륜부의 장식처럼 치장했다. 지붕 4면이 맞닿는 추녀마루는 도톰하게 표현했고 경사는 완만하다. 처마 끝이 위로 살짝 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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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천신일(왼쪽) 우리옛돌문화재단 이사장이 2일 서울 성북구 우리옛돌박물관에서 열린 일본 유출 문화재 환수 기념식에서 오자와 회계법인 오자와 테리유키 회장에게 양띠를 의미하는 그림을 전달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19.07.02. radiohead@newsis.com |
팔각지붕 장명등은 조선 후기에 제작됐다. 4면으로 다듬은 평면 사각형 장명등이다. 4면에 정사각형 창을 모두 뚫어서 화창을 만들었다. 대석 각 면에 안상문과 연판문을 새겼다. 두 부분을 체감해 마디처럼 장식했다. 개석은 팔작지붕으로 용마루 위에는 연꽃 모양의 보주를 장식하고, 밑단에는 구슬장식을 둘렀다. 삼각형 합각은 높지 않으며 안쪽에 들보 3개가 돋을새김됐다. 추녀마루는 둥글고 높게 표현했다.
비석받침은 묘비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묘비는 공업(功業)과 학문이 뛰어나 후세에 사표가 될 만한 인물의 평생사적을 기록해 묘역에 세운 비석이다. 조선시대 성리학 이론을 실천하는 한 방법으로 조상의 공과 덕을 밝히는 것이 후손이 당연히 해야 할 효와 예라는 생각에서 묘비 설립이 유행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오자와 부부에게 감사패, 장 부사장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정 청장은 "문화재가 제자리에 있을 때 그 가치가 가장 빛난다고 했는데 이곳에 새 둥지를 튼 장군석과 장명등이 조금 편해 보인다"며 "오자와 회장이 이 장군석과 석등이 원래 한국의 것이니 당연히 돌아갈 곳은 한국이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증했다고 들었다.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큰 우의와 결단에 다시 한 번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suejeeq@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