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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20160412 "日로 팔려가는 石物 아까워 '내가 사겠다' 나선게 수집 시작"

작성자 : 우리옛돌박물관 | 작성일 : 16-04-13 12:44 | 조회수 : 25,800

*지면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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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신일 우리옛돌문화재단 이사장이 11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우리옛돌박물관 정문 와불 앞에서 석조유물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천신일 우리옛돌문화재단 이사장

북악산 자락이 내려앉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을 오르다 보면 낯설지 않은 온갖 풍상을 겪은 우리 돌(석조유물)이 반긴다. 단정한 옷매무시를 가다듬은 문인석(文人石)의 인사와 와불(臥佛·누워 있는 부처)의 미소다. 석조유물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우리옛돌박물관이다. “1979년이었던가…. 서울 인사동 어느 골동품상을 둘러보다가 석조유물이 일본인에게 팔리는 것을 보고 젊은 혈기에 내가 사겠다고 한 것이 돌에 꽂힌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석조유물을 자그마치 1억7000만 원인가를 주고 샀지요. 그때는 우리 문화재가 일본으로 반출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지난 11일 오후 우리옛돌박물관에서 만난 천신일(73) 우리옛돌문화재단 이사장은 “최근 박물관을 방문한 외국인들마다 문인석 등 각종 석조유물을 둘러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더라”며 “우리 옛돌의 중요성과 문화재적 가치를 우리만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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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이사장이 지난 40여 년에 걸쳐 수집한 문인석과 장군석, 동자석, 와불, 석수(石獸·돌로 만든 동물의 상), 벅수(마을 어귀나 다리 또는 길가에 수호신으로 세운 사람 모양의 형상) 등 1250여 점의 석조유물을 바탕으로 지난해 11월 성북동에 ‘우리옛돌박물관’을 개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석조유물에는 거북과 연꽃은 물론 각종 동물, 남근 등 다양한 의미의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성스러움과 풍요로움, 길상(吉祥·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과 행운 등을 나타내는 상징 무늬다.

그는 박물관에 전시된 석조유물 하나하나를 고증하는 작업에 들어가는 한편 스토리텔링이 있는 전시를 통해 한국 석조유물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박물관 개관 이후 예상보다 많은 관람객이 찾아오는 데다 외국인 관광객과 석조유물이 낯선 일반 관람객에게는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쉽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기원, 소망 등이 담겨 있는 석조유물의 특징을 살려 다양한 이벤트와 아트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그는 “옛돌 조각 속에는 수복강녕과 길상은 물론 조상의 혼과 얼이 담겨 있다”며 “석조유물에 새겨진 무병장수, 다산의 상징인 거북, 창조와 번영의 연꽃 등을 살피다 보면 조상들과 천년의 시간을 두고 대화하는 느낌”이라며 미소 지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1250여 점의 석조유물 중 천 이사장에게 가장 소중한 유물은 무엇일까.

그는 석조물 하나하나에 자신의 혼이 들어 있다고 하지만 2001년 일본에서 환수해온 문인석과 장군석, 동자석 등에 특히 애착을 갖고 있다. 그만큼 환수를 위한 열정과 고생한 이야기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관람객이 가장 먼저 찾는 박물관 1층에 ‘환수유물관’을 설치한 이유다. 이곳에는 당시 우여곡절 끝에 일본에서 들여온 조선 시대 석조유물 70점 중 47점이 전시돼 있다.

“문인석은 능과 묘를 지키기 위해 세워진 조각품으로 문인들의 의복 문화는 물론 키에 따라 능묘 주인의 품계를 추측할 수 있는 조각입니다. 장군석, 석수와 함께 수백, 수천 년간 한결같이 능묘를 지켜온 석물이죠. 하지만 이런 문인석과 장군석 등은 우리가 소중함을 잊고 있는 사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개발연대를 거치며 상당수가 일본으로 반출됐습니다.”

천 이사장은 1978년 이후 사업차 일본을 오갈 때마다 반출된 석물들을 어떻게 환수하느냐를 고민했다. 그에게는 소중한 우리 문화재이지만 일반인들 입장에서는 돌에다 돈을 쓰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주변에서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조상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석물들을 다시 들여온다는 사명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뜻하지 않은 소식이 전해진 것은 2000년 어느 날이었다. 일본 나고야(名古屋) 미에(三重)현에 사는 구사카 마모루(日下守) 씨가 한국 석조유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곧바로 일본으로 날아가 구사카 씨를 만나 환수를 추진했다. 하지만 설득은 쉽지 않았다.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사 가라고 하는 등 석조유물을 내줄 생각이 없는 듯했기 때문이다.

“구사카 씨를 설득하기 위해 한국에 초청해 용인 세중옛돌박물관을 보여주는 등 정성을 다했습니다. 6개월에 걸쳐 설득한 끝에 석조유물 16점은 돈을 주고 매입하는 대신 54점은 기증받았지요. 정말 힘들었지만, 보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석조유물을 일본에서 들여오는 데 어려움은 전혀 딴 곳에 있었다. 무게가 수십㎏에서 수백㎏ 나가는 석조물의 안전한 운반이 문제였다. 문인석, 장군석 등 예술작품으로 조각된 석조물을 훼손 없이 들여온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는 기중기까지 동원해 한 점씩 나무박스를 만들어 컨테이너에 넣는 방식으로 석조유물을 안전하게 옮겨오는 데 성공했다.

“석조유물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어딘지 아세요. 바로 목입니다. 목이 부러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썼죠. 당시에 가장 좋은 방법은 스펀지를 대고 이중·삼중으로 감싼 후 포장해 나무상자에 넣어 운반하는 것이었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옮겼나’ 싶을 정도니까요.”

천 이사장은 석조유물을 수집, 환수해 오면서 돈도 많이 들었지만, 문화재 환수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도 많이 했다.

석조유물을 넘어 우리 전통 문화재 환수를 위해 국가와 개인의 역할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정립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이 가장 쉽게 석조유물을 접할 수 있도록 서울 시내 옛돌박물관 건립을 구상했다.

“문화재 환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분의 관심입니다. 개인의 관심과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유출된 문화재를 한 점이라도 더 가져올 수 있지요. 일본에는 아직도 교토(京都), 도쿄(東京) 등 박물관이나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우리 석조유물만 수천 점이 더 있습니다. 앞으로도 일본인들을 설득해 우리 유물을 다시 들여올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해외로 밀반출된 문화재를 더 많이 환수해 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는 수집한 석조유물을 이곳저곳에 기증도 많이 했다. 이화여대 박물관에 연자방아 2점, 문인석 14점, 동자석 6점 등을, 국립민속박물관에 문인석 16점, 동자석 4점, 벅수 4점을 기증했다. 지난 2002년에는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박물관 한국갤러리에 문인석 2점을 영구 대여 형식으로 기증했고, 2007년에는 일본 와세다(早稻田)대에 문인석 4점, 동자석 2점, 벅수 2점을 영구 대여했다. 또 이천시립박물관, 최순우 전 국립박물관장 생가,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등에도 문인석을 기증했다.

천 이사장은 “석조유물은 우리 조상들의 얼과 혼이 들어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우리옛돌박물관이 학술 교류의 장, 신진 작가의 전시공간, 다양한 문화예술 강좌가 열리는 박물관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43년 9월 부산에서 태어난 천 이사장은 경남고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 제철화학을 설립하면서 기업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여행사 세중을 설립하고, 나모인터랙티브를 합병하는 등 사업에서 승승장구했다. 그는 스포츠에서도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레슬링협회장을 수차례 역임하며 한국에 올림픽 메달 수십 개를 선사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61학번 동기로 지금도 매월 정기모임을 열고 가족들과 같이 식사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다.  


또 이건희 삼성 회장의 권유로 1981년부터 대한레슬링협회에 몸담았다. 고 박태준 포스코 회장과 인연도 깊다. 우리옛돌박물관에는 미국에서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고 박 회장 딸 박유아 씨가 그린 아버지 초상화도 걸려 있다.

천 이사장은 1985년 포항공대(포스텍)에 학교 부지 20만여㎡(약 6만500평)도 기증했다. 고려대와 연세대, 포항공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청소년교육단체, ROTC중앙회관 건립기금 등에 84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2004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대한민국 체육상, 2002년 메세나 대상 창의상, 2002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석류장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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