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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추상.구상.사이
  • 추상.구상.사이.

돌조각이 될 만한 돌도 처음엔 ‘돌’이다.
한 정씩 다듬어진 돌은 ‘추상’에서 ‘구상’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돌조각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는 ‘심상’이 된다.
수천 년 사람의 마음을 담은 돌조각은 비바람에 다시 ‘구상’에서 ‘추상’으로 그리고 ‘돌’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그림 속에 한 획 한 획 내밀하게 숨겨져 있는 
‘추상’과 ‘구상’사이에서 ‘심상’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돌도 그림도 ‘심상’이 만들어낸 ‘형상’이며 ‘형상’속에 담겨진 ‘심상’이다.
  •  “여백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비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물과 공간이 강렬한 에너지로 반응하면서 서로에게 응답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부터 이우환은 자신의 작품에 조금씩 변화를 시도한다. 큰 캔버스에 대담한 붓 터치로 한 개 또는 몇 개의 점을 찍고 대부분의 공간을 여백으로 남겨둔다. 철학적 감성을 담은 각각의 점은 그 크기 및 위치, 간격, 획의 방향성에 따라 다른 점과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조응하고 캔버스 전체에 강한 존재감이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로써 캔버스의 여백은 더욱 강조되어 외부와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함축성 있는 한 점 한 점을 통해 주변으로 확장되는 울림의 공간을 구현한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한의 세계와 관계하고 싶다’는 그의 입장처럼 여백의 미학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 “나는 눈에 보이는 자연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의 내면세계를 그릴 뿐이다. 그 과정은 추상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표현된 것은 나의 마음속에 있는 사실이다. 그것이 비록 꿈이나 환상에 기인된다고 할지라도 화가가 붓을 들고 화폭에 옮겼을 때는 벌써 그 자체의 선이나 색이 구체성을 띈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작업을 대중이 이해하려면 많은 노력과 지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의 화면에는 자연계에 있는 누구나 볼 수 있는 형태와는 다른 또 하나의 형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관은 생명의 존엄과 영원성을 문자나 유물을 추상화한 이미지로 그려내었다. 세계적 미술평론가 가스통 딜은 그를 '동서양 어느 한쪽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이 문화들을 융합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예술가’로 평가하였다. 어둡고 거친 질감으로 우울한 정서를 드러냈던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푸른 공간>은 맑은 청색의 긍정적이고 밝아진 색채로 마음 속 형상들이 화폭 속에서 어우러지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보여준다.
  • "나는 하찮은 물체들 속에서 생명체의 거대한 에너지를 본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구상성과 추상성, 거대함과 미소함… 이런 대립적이고 상반된 요소들이 내 속예 뒤섞여 있다. 나는 내 의식이 형성된 복합적 환경이 그림을 통해 있는 그대로 드러나기를 원한다. 나는 내 그림이 관념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보다 직접적이고 싶다."

꽃의 화가로 불리는 김종학은 산, 꽃, 나비 등과 같은 자연 속 대상을 즐겨 그린다. 그는 현대미술에서 다소 진부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이러한 소재를 자신의 독특한 조형의식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다. 그는 색채를 위하여 전통적인 자연묘사의 실제 요소들을 거부했다. 형태의 사실성이나 정확성 등 전통회화가 갖는 제약에서 벗어난 그의 그림에는 생명력의 자유로운 분출을 느낄 수 있다. <설악폭포>는 풍요로운 자연 속의 화사한 꽃과 그 위를 날아다니는 벌과 새가 평화로운 자연의 질서를 연출하는데 특히 화면은 자유분방한 형태에 강한 색채를 부여하여 강렬한 느낌을 자아내면서도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있어 안정감을 이루고 있다.
  •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噓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김창열은 파리에 정착한 1970년대부터 40여 년간 사실적인 물방울을 화폭에 담았다. <회귀>는 그가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기면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은 시리즈로 자신의 추억과 경험을 이야기한다. 거친 마포 캔버스를 채운 천자문에는 어린 시절 서예를 가르쳐 주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고, 그 위엔 투명하고 영롱한 물방울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생생하게 맺혀있다. 절제된 표현으로 스스로를 비워내듯 반복적으로 그린 물방울은 자연의 일부로 회귀하려는 그의 인생철학을 보여준다.
  • “나는 동양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한다고 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 이기에는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력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를 떠나 봄으로써 더 많은 우리나라를 알았고 그것을 표현했으며 또 생각했다. 파리라는 국제경기장에 나서니 우리 하늘이 역력히 보였고 우리의 노래가 강력히 들려왔다. 우리들은 우리의 것을 들고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 것이 아닌 그것은 틀림없이 모방이 아니면 복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김환기는 한국 모더니즘 1세대로 한국의 정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하여 고유의 서정성이 드러나는 세계를 구현하였다. 간결한 선묘로 추상화하여 그린 산·달·강 등의 자연물은 이후 점차 점·선·면의 순수한 조형 요소로 바뀌어 나타난다. 정돈된 구도와 점과 선으로 표현된 상징적인 형태는 한정된 공간과 여백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수채화처럼 투명한 효과를 내고 두텁게 발라 질감을 살려주는 과슈Gouache를 특히 많이 사용하는데, 이것은 그의 작품이 순수한 추상으로 변화하는 시기와 맞물려있다. <무제>는 소재와 조형의 실험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60년대 작품들이다.
  • “사물을 있는 그대로 실사하면 자연의 미를 창출하기보다 결국 자기 밖에 표현하지 못하게 되지요. 자기 밖에 없다면 그것은 작품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게 돼요.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자연을 탄생시킬 수 있어야겠지요.” 

1958년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와 레알리테 누벨전(Salon des réalités nouvelles)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절규」 (Le Hurlement)는 이후 권옥연 회화세계의 근간이 되는 결정적인 작품이었다. 야생의 동물과 거칠고 마른 나뭇가지와 같은 형상들이 두텁게 발린 무채색의 유화 얼룩들 사이에서 흐릿하게 떠오르는 이 추상 풍경화는, 제목이 암시하듯 절규하고 울부짖는 생명체를 의도한 작품으로, 권옥연 회화의 이 같은 변화는 분명히 195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접한 전후 앵포르멜(Informel) 미술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 “추상은 말이 없다. 설명도 필요 없다. 보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내가 그린 건 구체적인 대상의 자연이 아니라 선과 면, 색채들로 구성된 추상 형태의 자연이다.”

유영국은 김환기, 이중섭 등과 함께 일본에서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근간을 형성한 작가이다. 산, 길, 나무 등의 자연이미지를 추상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기하학적 구성과 강렬한 색채가 어우러진 시적 아름다움과 경쾌한 음악적 울림을 자아낸다.초기의 자연주의적 구상이 1970년대 이후 윤곽이 확실하고 평면화된 밝고 강한 색채의 추상으로 변화되었다. <작품 Work>는 선명한 적색과 황색의 색채대비를 통해 전달되는 강렬함과 가을의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생동감이 잘 드러난다.
  • “나는 오래오래 바라보는 동안 거의 나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대상이 아니면 잘 그리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파주의 산, 과수원, 연못은 내 그림의 끝없는 원천이자 소재이다. 나무 하나, 연못 하나, 산 하나에서 무한히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또, 사계절에 따른 변화에서도 남다른 애착을 느낀다. 평범하기만 했던 야트막한 산과 논, 그리고 나무 하나하나가 독특한 애정으로 손짓해 부른다. 산, 나무, 흙 속에서 우러나오는 무한한 생명력에 압도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자연의 힘에 새로운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 같다. 나는 한 그루 나무, 한 포기 풀, 한 줌의 흙을 사랑스러운 마음과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이들은 깊은 곳으로부터 내 화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산과 들의 풍경을 화려한 색채로 표현된 이대원의 <농원>에는 청색과 녹색의 터치에 분홍과 노랑의 생기 있고 발랄함이 어우러져 작품 전체에 따뜻함이 흐른다. 밝은 빛들이 바람에 날리는 듯한 반복적인 선의 움직임으로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완성한다.
  •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윤명로의 얼레짓 시리즈는 동양적인 재질을 이용해 동양적인 것을 탐구하는 시도이다. 그림을 '그리기'위해 전통 동양화 붓으로 수성 물감을 사용해 무명에 그린 얼레짓 시리즈는 전통 안료의 색채인 녹색과 청색, 흰색을 통해 이것이 무명천에 스며들고 그려지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대상의 묘사가 아닌 색채와 마티에르가 화면의 중심이 되는 얼레짓 시리즈는 길고 가는 세필로 이루어진 선들로 구성되어 있다. 큰 화면을 가득 채운 섬세한 화면 구성은 무명천에 스며들면서 번짐의 효과를 내고 지극히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인 것의 조화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 전광영은 1990년대부터 유화를 대신하는 매체로 한자를 도입하여 '집합'이라는 연작을 만들어 내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은은한 한지에 고서적의 글씨가 인쇄된 종이로 스티로폼 덩어리를 꼼꼼하게 포장하여 빼곡히 이어 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이는 가장 동양적인 정서를 세계적으로 통용할 수 있는 독특한 조형언어로서, 구획된 평면에 사방으로 뻗은 선과 색의 농담이 묘한 리듬감을 준다. 삐죽삐죽 솟아오른 입체들의 돌기 된 표면에서 다이내믹한 운동감이 느껴지며 일정한 구조의 반복은 입체와 평면의 조화로 독특한 마티에르와 함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창출한다.
  • "어린 시절부터 내 현실의 아버지는 다분히 상징적이고 상상적인 아버지였다. 나의 아버지이기보다는 한국 산업의 아버지였고 국가 경제의 아버지였으며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였다."

박유아는 故박태준 회장의 차녀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동양화를 배우고 하버드와 콜롬비아대학원에서 예술을 전공하였다. 현재 뉴욕에서 활동중인 그는 한지에 먹과 채색을 이용한 동양화에서 작업 영역을 확장하여 세라믹, 메탈, 섬유 같은 다양한 소재를 폭넓게 사용한다. <철인-짧은 일생을 영원 조국에>는 건설 현장에서 국가의 장래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고뇌하는 故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풍부한 감성을 동시에 지닌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업적을 표현하였다.
추상.구상.사이.

돌조각이 될 만한 돌도 처음엔 ‘돌’이다.
한 정씩 다듬어진 돌은 ‘추상’에서 ‘구상’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돌조각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는 ‘심상’이 된다.
수천 년 사람의 마음을 담은 돌조각은 비바람에 다시 ‘구상’에서 ‘추상’으로 그리고 ‘돌’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그림 속에 한 획 한 획 내밀하게 숨겨져 있는 
‘추상’과 ‘구상’사이에서 ‘심상’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돌도 그림도 ‘심상’이 만들어낸 ‘형상’이며 ‘형상’속에 담겨진 ‘심상’이다.
추상.구상.사이
 “여백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비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물과 공간이 강렬한 에너지로 반응하면서 서로에게 응답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부터 이우환은 자신의 작품에 조금씩 변화를 시도한다. 큰 캔버스에 대담한 붓 터치로 한 개 또는 몇 개의 점을 찍고 대부분의 공간을 여백으로 남겨둔다. 철학적 감성을 담은 각각의 점은 그 크기 및 위치, 간격, 획의 방향성에 따라 다른 점과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조응하고 캔버스 전체에 강한 존재감이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로써 캔버스의 여백은 더욱 강조되어 외부와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함축성 있는 한 점 한 점을 통해 주변으로 확장되는 울림의 공간을 구현한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한의 세계와 관계하고 싶다’는 그의 입장처럼 여백의 미학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이우환 <조응>
“나는 눈에 보이는 자연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의 내면세계를 그릴 뿐이다. 그 과정은 추상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표현된 것은 나의 마음속에 있는 사실이다. 그것이 비록 꿈이나 환상에 기인된다고 할지라도 화가가 붓을 들고 화폭에 옮겼을 때는 벌써 그 자체의 선이나 색이 구체성을 띈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작업을 대중이 이해하려면 많은 노력과 지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의 화면에는 자연계에 있는 누구나 볼 수 있는 형태와는 다른 또 하나의 형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관은 생명의 존엄과 영원성을 문자나 유물을 추상화한 이미지로 그려내었다. 세계적 미술평론가 가스통 딜은 그를 '동서양 어느 한쪽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이 문화들을 융합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예술가’로 평가하였다. 어둡고 거친 질감으로 우울한 정서를 드러냈던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푸른 공간>은 맑은 청색의 긍정적이고 밝아진 색채로 마음 속 형상들이 화폭 속에서 어우러지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보여준다.
남관 <푸른 공간>
"나는 하찮은 물체들 속에서 생명체의 거대한 에너지를 본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구상성과 추상성, 거대함과 미소함… 이런 대립적이고 상반된 요소들이 내 속예 뒤섞여 있다. 나는 내 의식이 형성된 복합적 환경이 그림을 통해 있는 그대로 드러나기를 원한다. 나는 내 그림이 관념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보다 직접적이고 싶다."

꽃의 화가로 불리는 김종학은 산, 꽃, 나비 등과 같은 자연 속 대상을 즐겨 그린다. 그는 현대미술에서 다소 진부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이러한 소재를 자신의 독특한 조형의식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다. 그는 색채를 위하여 전통적인 자연묘사의 실제 요소들을 거부했다. 형태의 사실성이나 정확성 등 전통회화가 갖는 제약에서 벗어난 그의 그림에는 생명력의 자유로운 분출을 느낄 수 있다. <설악폭포>는 풍요로운 자연 속의 화사한 꽃과 그 위를 날아다니는 벌과 새가 평화로운 자연의 질서를 연출하는데 특히 화면은 자유분방한 형태에 강한 색채를 부여하여 강렬한 느낌을 자아내면서도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있어 안정감을 이루고 있다.
김종학 <설악폭포>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噓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김창열은 파리에 정착한 1970년대부터 40여 년간 사실적인 물방울을 화폭에 담았다. <회귀>는 그가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기면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은 시리즈로 자신의 추억과 경험을 이야기한다. 거친 마포 캔버스를 채운 천자문에는 어린 시절 서예를 가르쳐 주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고, 그 위엔 투명하고 영롱한 물방울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생생하게 맺혀있다. 절제된 표현으로 스스로를 비워내듯 반복적으로 그린 물방울은 자연의 일부로 회귀하려는 그의 인생철학을 보여준다.
김창열 <회귀>
“나는 동양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한다고 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 이기에는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력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를 떠나 봄으로써 더 많은 우리나라를 알았고 그것을 표현했으며 또 생각했다. 파리라는 국제경기장에 나서니 우리 하늘이 역력히 보였고 우리의 노래가 강력히 들려왔다. 우리들은 우리의 것을 들고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 것이 아닌 그것은 틀림없이 모방이 아니면 복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김환기는 한국 모더니즘 1세대로 한국의 정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하여 고유의 서정성이 드러나는 세계를 구현하였다. 간결한 선묘로 추상화하여 그린 산·달·강 등의 자연물은 이후 점차 점·선·면의 순수한 조형 요소로 바뀌어 나타난다. 정돈된 구도와 점과 선으로 표현된 상징적인 형태는 한정된 공간과 여백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수채화처럼 투명한 효과를 내고 두텁게 발라 질감을 살려주는 과슈Gouache를 특히 많이 사용하는데, 이것은 그의 작품이 순수한 추상으로 변화하는 시기와 맞물려있다. <무제>는 소재와 조형의 실험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60년대 작품들이다.
김환기 <무제>
“사물을 있는 그대로 실사하면 자연의 미를 창출하기보다 결국 자기 밖에 표현하지 못하게 되지요. 자기 밖에 없다면 그것은 작품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게 돼요.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자연을 탄생시킬 수 있어야겠지요.” 

1958년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와 레알리테 누벨전(Salon des réalités nouvelles)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절규」 (Le Hurlement)는 이후 권옥연 회화세계의 근간이 되는 결정적인 작품이었다. 야생의 동물과 거칠고 마른 나뭇가지와 같은 형상들이 두텁게 발린 무채색의 유화 얼룩들 사이에서 흐릿하게 떠오르는 이 추상 풍경화는, 제목이 암시하듯 절규하고 울부짖는 생명체를 의도한 작품으로, 권옥연 회화의 이 같은 변화는 분명히 195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접한 전후 앵포르멜(Informel) 미술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권옥연 <절규>
“추상은 말이 없다. 설명도 필요 없다. 보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내가 그린 건 구체적인 대상의 자연이 아니라 선과 면, 색채들로 구성된 추상 형태의 자연이다.”

유영국은 김환기, 이중섭 등과 함께 일본에서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근간을 형성한 작가이다. 산, 길, 나무 등의 자연이미지를 추상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기하학적 구성과 강렬한 색채가 어우러진 시적 아름다움과 경쾌한 음악적 울림을 자아낸다.초기의 자연주의적 구상이 1970년대 이후 윤곽이 확실하고 평면화된 밝고 강한 색채의 추상으로 변화되었다. <작품 Work>는 선명한 적색과 황색의 색채대비를 통해 전달되는 강렬함과 가을의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생동감이 잘 드러난다.
유영국 <작품>
“나는 오래오래 바라보는 동안 거의 나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대상이 아니면 잘 그리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파주의 산, 과수원, 연못은 내 그림의 끝없는 원천이자 소재이다. 나무 하나, 연못 하나, 산 하나에서 무한히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또, 사계절에 따른 변화에서도 남다른 애착을 느낀다. 평범하기만 했던 야트막한 산과 논, 그리고 나무 하나하나가 독특한 애정으로 손짓해 부른다. 산, 나무, 흙 속에서 우러나오는 무한한 생명력에 압도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자연의 힘에 새로운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 같다. 나는 한 그루 나무, 한 포기 풀, 한 줌의 흙을 사랑스러운 마음과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이들은 깊은 곳으로부터 내 화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산과 들의 풍경을 화려한 색채로 표현된 이대원의 <농원>에는 청색과 녹색의 터치에 분홍과 노랑의 생기 있고 발랄함이 어우러져 작품 전체에 따뜻함이 흐른다. 밝은 빛들이 바람에 날리는 듯한 반복적인 선의 움직임으로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완성한다.
이대원<농원>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윤명로의 얼레짓 시리즈는 동양적인 재질을 이용해 동양적인 것을 탐구하는 시도이다. 그림을 '그리기'위해 전통 동양화 붓으로 수성 물감을 사용해 무명에 그린 얼레짓 시리즈는 전통 안료의 색채인 녹색과 청색, 흰색을 통해 이것이 무명천에 스며들고 그려지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대상의 묘사가 아닌 색채와 마티에르가 화면의 중심이 되는 얼레짓 시리즈는 길고 가는 세필로 이루어진 선들로 구성되어 있다. 큰 화면을 가득 채운 섬세한 화면 구성은 무명천에 스며들면서 번짐의 효과를 내고 지극히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인 것의 조화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윤명로 <얼레짓 84-523>
전광영은 1990년대부터 유화를 대신하는 매체로 한자를 도입하여 '집합'이라는 연작을 만들어 내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은은한 한지에 고서적의 글씨가 인쇄된 종이로 스티로폼 덩어리를 꼼꼼하게 포장하여 빼곡히 이어 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이는 가장 동양적인 정서를 세계적으로 통용할 수 있는 독특한 조형언어로서, 구획된 평면에 사방으로 뻗은 선과 색의 농담이 묘한 리듬감을 준다. 삐죽삐죽 솟아오른 입체들의 돌기 된 표면에서 다이내믹한 운동감이 느껴지며 일정한 구조의 반복은 입체와 평면의 조화로 독특한 마티에르와 함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창출한다.
전광영 <집합97-41>
"어린 시절부터 내 현실의 아버지는 다분히 상징적이고 상상적인 아버지였다. 나의 아버지이기보다는 한국 산업의 아버지였고 국가 경제의 아버지였으며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였다."

박유아는 故박태준 회장의 차녀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동양화를 배우고 하버드와 콜롬비아대학원에서 예술을 전공하였다. 현재 뉴욕에서 활동중인 그는 한지에 먹과 채색을 이용한 동양화에서 작업 영역을 확장하여 세라믹, 메탈, 섬유 같은 다양한 소재를 폭넓게 사용한다. <철인-짧은 일생을 영원 조국에>는 건설 현장에서 국가의 장래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고뇌하는 故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풍부한 감성을 동시에 지닌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업적을 표현하였다.
박유아 <철인-짧은 일생을 영원 조국에>
추상.구상.사이.

돌조각이 될 만한 돌도 처음엔 ‘돌’이다.
한 정씩 다듬어진 돌은 ‘추상’에서 ‘구상’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돌조각은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는 ‘심상’이 된다.
수천 년 사람의 마음을 담은 돌조각은 비바람에 다시 ‘구상’에서 ‘추상’으로 그리고 ‘돌’이 된다.

이번 전시에서 그림 속에 한 획 한 획 내밀하게 숨겨져 있는
‘추상’과 ‘구상’사이에서 ‘심상’을 찾아보았으면 한다.
돌도 그림도 ‘심상’이 만들어낸 ‘형상’이며 ‘형상’속에 담겨진 ‘심상’이다.
“여백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비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물과 공간이 강렬한 에너지로 반응하면서 서로에게 응답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이후부터 이우환은 자신의 작품에 조금씩 변화를 시도한다. 큰 캔버스에 대담한 붓 터치로 한 개 또는 몇 개의 점을 찍고 대부분의 공간을 여백으로 남겨둔다. 철학적 감성을 담은 각각의 점은 그 크기 및 위치, 간격, 획의 방향성에 따라 다른 점과 다양한 방식으로 상호 조응하고 캔버스 전체에 강한 존재감이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로써 캔버스의 여백은 더욱 강조되어 외부와의 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함축성 있는 한 점 한 점을 통해 주변으로 확장되는 울림의 공간을 구현한다. ‘최소한의 개입으로 최대한의 세계와 관계하고 싶다’는 그의 입장처럼 여백의 미학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다.
“나는 눈에 보이는 자연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의 내면세계를 그릴 뿐이다. 그 과정은 추상에서 시작된 것이지만 표현된 것은 나의 마음속에 있는 사실이다. 그것이 비록 꿈이나 환상에 기인된다고 할지라도 화가가 붓을 들고 화폭에 옮겼을 때는 벌써 그 자체의 선이나 색이 구체성을 띈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작업을 대중이 이해하려면 많은 노력과 지성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의 화면에는 자연계에 있는 누구나 볼 수 있는 형태와는 다른 또 하나의 형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남관은 생명의 존엄과 영원성을 문자나 유물을 추상화한 이미지로 그려내었다. 세계적 미술평론가 가스통 딜은 그를 '동서양 어느 한쪽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이 문화들을 융합시킬 수 있는 유일무이한 예술가’로 평가하였다. 어둡고 거친 질감으로 우울한 정서를 드러냈던 이전의 작품들과 달리 <푸른 공간>은 맑은 청색의 긍정적이고 밝아진 색채로 마음 속 형상들이 화폭 속에서 어우러지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보여준다.
"나는 하찮은 물체들 속에서 생명체의 거대한 에너지를 본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구상성과 추상성, 거대함과 미소함… 이런 대립적이고 상반된 요소들이 내 속예 뒤섞여 있다. 나는 내 의식이 형성된 복합적 환경이 그림을 통해 있는 그대로 드러나기를 원한다. 나는 내 그림이 관념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보다 직접적이고 싶다."

꽃의 화가로 불리는 김종학은 산, 꽃, 나비 등과 같은 자연 속 대상을 즐겨 그린다. 그는 현대미술에서 다소 진부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이러한 소재를 자신의 독특한 조형의식으로 구체화시키고 있다. 그는 색채를 위하여 전통적인 자연묘사의 실제 요소들을 거부했다. 형태의 사실성이나 정확성 등 전통회화가 갖는 제약에서 벗어난 그의 그림에는 생명력의 자유로운 분출을 느낄 수 있다. <설악폭포>는 풍요로운 자연 속의 화사한 꽃과 그 위를 날아다니는 벌과 새가 평화로운 자연의 질서를 연출하는데 특히 화면은 자유분방한 형태에 강한 색채를 부여하여 강렬한 느낌을 자아내면서도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감을 잃지 않고 있어 안정감을 이루고 있다.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噓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다."

김창열은 파리에 정착한 1970년대부터 40여 년간 사실적인 물방울을 화폭에 담았다. <회귀>는 그가 인생의 한 고비를 넘기면서 새롭게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은 시리즈로 자신의 추억과 경험을 이야기한다. 거친 마포 캔버스를 채운 천자문에는 어린 시절 서예를 가르쳐 주신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있고, 그 위엔 투명하고 영롱한 물방울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생생하게 맺혀있다. 절제된 표현으로 스스로를 비워내듯 반복적으로 그린 물방울은 자연의 일부로 회귀하려는 그의 인생철학을 보여준다.
“나는 동양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한다고 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가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 이기에는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력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를 떠나 봄으로써 더 많은 우리나라를 알았고 그것을 표현했으며 또 생각했다. 파리라는 국제경기장에 나서니 우리 하늘이 역력히 보였고 우리의 노래가 강력히 들려왔다. 우리들은 우리의 것을 들고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 것이 아닌 그것은 틀림없이 모방이 아니면 복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김환기는 한국 모더니즘 1세대로 한국의 정서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표현하여 고유의 서정성이 드러나는 세계를 구현하였다. 간결한 선묘로 추상화하여 그린 산·달·강 등의 자연물은 이후 점차 점·선·면의 순수한 조형 요소로 바뀌어 나타난다. 정돈된 구도와 점과 선으로 표현된 상징적인 형태는 한정된 공간과 여백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수채화처럼 투명한 효과를 내고 두텁게 발라 질감을 살려주는 과슈Gouache를 특히 많이 사용하는데, 이것은 그의 작품이 순수한 추상으로 변화하는 시기와 맞물려있다. <무제>는 소재와 조형의 실험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60년대 작품들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실사하면 자연의 미를 창출하기보다 결국 자기 밖에 표현하지 못하게 되지요. 자기 밖에 없다면 그것은 작품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상실하게 돼요. 완전히 새로운 하나의 자연을 탄생시킬 수 있어야겠지요.”

1958년 살롱 도톤느(Salon d'automne)와 레알리테 누벨전(Salon des réalités nouvelles)에 출품되었던 작품으로 「절규」 (Le Hurlement)는 이후 권옥연 회화세계의 근간이 되는 결정적인 작품이었다. 야생의 동물과 거칠고 마른 나뭇가지와 같은 형상들이 두텁게 발린 무채색의 유화 얼룩들 사이에서 흐릿하게 떠오르는 이 추상 풍경화는, 제목이 암시하듯 절규하고 울부짖는 생명체를 의도한 작품으로, 권옥연 회화의 이 같은 변화는 분명히 195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접한 전후 앵포르멜(Informel) 미술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추상은 말이 없다. 설명도 필요 없다. 보는 대로 이해하면 된다. 내가 그린 건 구체적인 대상의 자연이 아니라 선과 면, 색채들로 구성된 추상 형태의 자연이다.”

유영국은 김환기, 이중섭 등과 함께 일본에서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근간을 형성한 작가이다. 산, 길, 나무 등의 자연이미지를 추상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기하학적 구성과 강렬한 색채가 어우러진 시적 아름다움과 경쾌한 음악적 울림을 자아낸다.초기의 자연주의적 구상이 1970년대 이후 윤곽이 확실하고 평면화된 밝고 강한 색채의 추상으로 변화되었다. <작품 Work>는 선명한 적색과 황색의 색채대비를 통해 전달되는 강렬함과 가을의 낙엽이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생동감이 잘 드러난다.
“나는 오래오래 바라보는 동안 거의 나 자신의 일부가 되어버린 대상이 아니면 잘 그리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파주의 산, 과수원, 연못은 내 그림의 끝없는 원천이자 소재이다. 나무 하나, 연못 하나, 산 하나에서 무한히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또, 사계절에 따른 변화에서도 남다른 애착을 느낀다. 평범하기만 했던 야트막한 산과 논, 그리고 나무 하나하나가 독특한 애정으로 손짓해 부른다. 산, 나무, 흙 속에서 우러나오는 무한한 생명력에 압도당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자연의 힘에 새로운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 같다. 나는 한 그루 나무, 한 포기 풀, 한 줌의 흙을 사랑스러운 마음과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이들은 깊은 곳으로부터 내 화심을 이끌어 내고 있다.”

산과 들의 풍경을 화려한 색채로 표현된 이대원의 <농원>에는 청색과 녹색의 터치에 분홍과 노랑의 생기 있고 발랄함이 어우러져 작품 전체에 따뜻함이 흐른다. 밝은 빛들이 바람에 날리는 듯한 반복적인 선의 움직임으로 생동감 넘치는 화면을 완성한다.
1970년대 말부터 시작된 윤명로의 얼레짓 시리즈는 동양적인 재질을 이용해 동양적인 것을 탐구하는 시도이다. 그림을 '그리기'위해 전통 동양화 붓으로 수성 물감을 사용해 무명에 그린 얼레짓 시리즈는 전통 안료의 색채인 녹색과 청색, 흰색을 통해 이것이 무명천에 스며들고 그려지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대상의 묘사가 아닌 색채와 마티에르가 화면의 중심이 되는 얼레짓 시리즈는 길고 가는 세필로 이루어진 선들로 구성되어 있다. 큰 화면을 가득 채운 섬세한 화면 구성은 무명천에 스며들면서 번짐의 효과를 내고 지극히 동양적이면서도 서양적인 것의 조화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전광영은 1990년대부터 유화를 대신하는 매체로 한자를 도입하여 '집합'이라는 연작을 만들어 내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다. 은은한 한지에 고서적의 글씨가 인쇄된 종이로 스티로폼 덩어리를 꼼꼼하게 포장하여 빼곡히 이어 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이는 가장 동양적인 정서를 세계적으로 통용할 수 있는 독특한 조형언어로서, 구획된 평면에 사방으로 뻗은 선과 색의 농담이 묘한 리듬감을 준다. 삐죽삐죽 솟아오른 입체들의 돌기 된 표면에서 다이내믹한 운동감이 느껴지며 일정한 구조의 반복은 입체와 평면의 조화로 독특한 마티에르와 함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창출한다.
"어린 시절부터 내 현실의 아버지는 다분히 상징적이고 상상적인 아버지였다. 나의 아버지이기보다는 한국 산업의 아버지였고 국가 경제의 아버지였으며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였다."

박유아는 故박태준 회장의 차녀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동양화를 배우고 하버드와 콜롬비아대학원에서 예술을 전공하였다. 현재 뉴욕에서 활동중인 그는 한지에 먹과 채색을 이용한 동양화에서 작업 영역을 확장하여 세라믹, 메탈, 섬유 같은 다양한 소재를 폭넓게 사용한다. <철인-짧은 일생을 영원 조국에>는 건설 현장에서 국가의 장래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고뇌하는 故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모습을 담고 있다. 강력한 카리스마와 풍부한 감성을 동시에 지닌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끈 업적을 표현하였다.